아버지의 이름을 기억하다
오희진 프로 가족의 호국원 방문기

오희진 프로 가족이 베트남 전쟁 참전유공자인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국립영천호국원을 찾았다. 아버지를 기억하고 나라를 위해 애쓴 분들이 가져다준 오늘의 평온함에 감사하는 하루였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한라의 국가유공자 가족이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WG Campus T-Lab 오희진 프로 가족이 베트남 전쟁 참전유공자인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국립영천호국원을 찾았다. 아버지를 기억하고 나라를 위해 애쓴 분들이 가져다준 오늘의 평온함에 감사하는 하루였다.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국가유공자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여를 달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 오희진 프로는 가족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내리던 빗속을 달려 경북 영천에 소재한 국립영천호국원을 찾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 故오유환 씨가 봉안 시설에 안치된 호국원은 일 년에 한 번씩 꾸준히 방문해 왔다. 어느새 비가 그친 호국원은 편안하고 정갈한 풍경으로 오희진 프로 가족을 반겨주었다.

“아버지는 4년 가까이 군 복무를 하던 중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셨어요. 잔병치레가 많고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시다가 후두암으로 1~2년 투병 끝에 2008년도에 돌아가셨어요. 환갑 나이 때였네요.”

오희진 프로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말이 없는 무뚝뚝한 성격이었던 아버지는 당신에 대해, 전쟁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기 싫었던 건 아닌지 이제 물어볼 수조차 없다. 오희진 프로는 자라면서 물어볼 생각을 못 했다는 게 못내 아쉽다.

착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초상

오희진 프로 가족이 베트남 전쟁 참전유공자인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국립영천호국원을 찾았다. 아버지를 기억하고 나라를 위해 애쓴 분들이 가져다준 오늘의 평온함에 감사하는 하루였다.

오희진 프로에게 아버지는 항상 건강이 좋지 않고 착하기만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국가유공자 신청도 당신이 자격이 되겠냐며 주변의 권유에도 망설이다가 병이 깊어지자 2006년에서야 신청했다. 고엽제와 후두암과의 인과 관계는 밝힐 수 없었고 참전유공자로 생존 연금과 의료비 지원을 받았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사기당하고 치이면서 고생할 때마다 답답하고 왜 저렇게 바보 같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돌아가시고 제가 나이가 들어보니 ‘참 착하고 순수한 분이셨구나’ ‘그래서 세상에 치이고 상처받으셨구나’라고 느껴요. 살다 보면 때로는 잇속을 챙기고 독해질 때도 있어야 하는 데 말이에요. 인간 대 인간으로 느끼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오희진 프로가 가정을 꾸리고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면서 그 안타까움은 더 커진다. 故오유환 씨는 오희진 프로가 결혼하기 1년 전 돌아가셨다. 외국에 있던 예비 며느리가 급하게 귀국해 인사만 나눴을 뿐 정작 결혼식장에서 당신의 자리는 오희진 프로의 외삼촌이 채웠다. 자식이 결혼해 손주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손자 하름이는 어느새 할아버지의 납골 안치단 높이와 눈높이가 맞을 만큼 키가 쑥 자랐다. 베트남에서 찍은 빛바랜 흑백 사진 속 할아버지의 젊은 모습을 보며 하름이는 아빠와 닮았나 비교하면서도 조금은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할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엽서에 적어본다.

아버지가 건넨 따스한 손

오희진 프로 가족이 베트남 전쟁 참전유공자인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국립영천호국원을 찾았다. 아버지를 기억하고 나라를 위해 애쓴 분들이 가져다준 오늘의 평온함에 감사하는 하루였다.

시종일관 아버지와 나눈 대화, 즐거웠던 추억이 없었노라 대답하던 오희진 프로가 잠시 잊고 살았던 기억 한 자락을 꺼냈다.

“아버지가 편찮으시기 시작한 다음 불국사에 갔어요. 석굴암까지 한참 걸어가야 하는 데 힘이 부치셨던건지 아버지가 제 손을 잡았어요. 스킨십이나 감정 교류라는 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에 당황스러웠어요. 생소하다는 감정이 맞을 듯해요. 동생과 돈을 모아 선물한 새 신발을 어디선가 바꿔 신고 와서 답답해했던 기억도 납니다.”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 추억을 쌓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건 오희진 프로에게 내내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살아생전 갖은 고생을 하신 당신이 편하게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하다.

국가유공자 자손의 마음

아버지가 안치된 충령당 1관에서 참배를 마친 가족은 호국원 일대를 둘러보았다. 한국전쟁 참전군인과 경찰,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국가유공자의 영령이 깃든 곳이기에 발소리 하나도 조심스러워진다. 이름 하나하나 기억할 수는 없지만 고맙고도 고마운 마음이다. 오희진 프로는 국가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왜 우리는 국가에 헌신하고 국가는 유공자들을 대우하는지···. 자신이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현재의 삶이 더 힘들었을 거라고 예상하면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켜낸 분들이 계셨다는 사실에 더 감사함을 느낀다.

“흔히 국가유공자 하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훈장을 받거나 부상을 입은 모습 등을 기대할 텐데 아버지는 그런 경우는 아니라서 국가유공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런 인터뷰에 나서는 일도 민망합니다. 세금 납부 외 국가에 기여하는 게 없어 항상 부끄러운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전쟁의 기억을 안고 아픔과 싸우며 일생을 마감한 아버지 故오유환 씨. 그를 기리는 아들 오희진 프로와 가족들. 국가에 대해, 아버지에 대해,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소중함을 깨닫는 의미 있는 하루가 되었기를 바란다.

정리 편집실  사진 김대진  촬영 협조 국립영천호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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