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비롯한 다가구·다세대 주택에 살면서 우리는 사람과의 연결에 소홀해졌다. 층간소음 걱정 없는 단독주택을 꿈꾸면서도 아파트 생활의 편리성과 경제적 가치를 놓지 못한다. 10여 년간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설계·감리해온 박창현 에이라운드건축 소장은 공동주택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단독주택의 개별성과 집합주택의 연결성을 결합한 ‘깜찍한 혼종’의 등장이랄까. 공간에 공유의 개념을 도입하고,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써드플레이스’라는 신개념 공동주택 브랜드를 통해 실험을 이어가는 그를 만나 공간과 관계의 연관성에 대해 물었다.
“집이 달라지면 행복해지나요?”
공간을 매개로 관계성 회복을 추구하는 건축가 박창현 소장은 에이라운드건축과 써드플레이스를 이끈다.
어떤 집에 살 것인가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가. 아파트 중심의 주거 형태가 대부분인 요즘은 독립성, 개별성을 매우 중시한다. 한 건물에 많은 사람이 살다 보니 프라이버시를 강조하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2년마다 전세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환경이니 1~2년 안에 이웃이 바뀐다. 어차피 헤어질 옆집 사람, 아랫집 사람과 굳이 인사를 건네거나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아파트 구조에서는 주변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게 당연해요. 공간이 사람들의 관계를 폐쇄적으로 몰아가는 거죠. 게다가 주거 기간이 짧은 것도 영향이 있죠. 10년 동안 같은 건물에 산다면 모른체하고 살 수 있을까요? 사회관계망에서 동떨어진 심리는 결국 사회 문제로 나타나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 거예요.”
단독주택의 개별성과 관계를 형성하는 공동주택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다양한 시도들.
관계를 이어주는 공용공간의 가치
박창현 소장은 일명 다가구·다세대라 하는 저층형 집합주택 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마당을 중심으로 2~3세대를 연결하기도 하고, 주방이나 거실을 매개 공간으로 활용하는 셰어하우스 개념의 집도 설계했다. 목욕탕 집 딸이 부모님과 자신이 거주할 집과 작업실을 꾸리고 세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다세대 주택 전농동 유일주택 작업도 그 시도의 일환이었다. 박 소장은 작업을 할수록 공간을 통한 관계 맺음의 필요성을 느꼈다.
“기존의 주택 구조를 들여다 볼 때 사람과 사람, 집과 집의 관계는 좋았을까?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질문을 던져봤어요. 그런데 그다지 좋지 않았거든요. 주거의 형식이나 기능을 통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변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용기를 내본 거죠.”
집주인과 세입자가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유일주택. ©김주영 작가
집합주택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조건에는 변함이 없다. 자의든 타의든, 건물을 짓는 사람이든,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이든. 다만 아파트는 규모가 크고 세대 수도 워낙 많으니 그들을 연결시키는 힘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저층형 집합주택은 10세대 내외이니 변화를 시도해볼 만했다.
박 소장은 공용공간에 주목했다. 현관문을 닫고 개별공간으로 들어가기 전, 누구나 이용하는 계단을 비롯한 공용공간이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였다. 자신의 공간이 아니기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공간, 점점 후미지고 어두워지는 공간에 빛이나 바람이 통하게 했다. 특별한 기능을 넣지 않았는데도 공용공간의 질이 높아지자 주택의 가치는 상승했다. 개별공간과 공용공간 사이에 공유공간을 만들자 필요에 따라 입주자들이 사용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교류가 일어났다. 전농동 유일주택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공용공간을 설계했다. 입주자 모두가 공유하는 정원, 옆집과 함께 가꾸는 화단, 공유하는 가구와 조명 등을 만들었다. 지속적인 실험을 거치면서 공용공간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집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확신을 가졌다.
유일주택의 계단, 복도, 정원과 같은 공용공간은 빛과 바람이 통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김주영 작가
거주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집
혹자는 가뜩이나 빡빡한 건물에 집어넣은 공용공간을 ‘잉여’, ‘쓸모 없는’ 공간으로 여긴다. 건축주는 임대 수익을 내야 하기에 전용면적을 최대한 뽑아내기를 바란다. 사는 사람을 더 배려해서 공용공간의 질과 활용성을 높이면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설득의 과정은 건축가의 몫이다.
“공용공간의 질이 경제적 재화로도 옮겨진다는 점이나 공간의 변화에 따라 거주하는 사람들의 집에 대한 심리적 경계가 달라지는 것을 직접 봐왔기 때문에 기존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건축주를 설득합니다.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이런 것도 있다는 하나의 답안을 제시는 거고요. 실제로 시도해보니 방향성은 옳다는 생각이 들고, 시도할수록 확신이 섭니다.”
기능을 넘어 거주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유일주택의 내부 공간. ©김주영 작가
이런 확신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기존 프로젝트를 보고 찾아오는 건축주가 생겼다. 그리고, 전용면적이 같다고 가정하면 천편일률적인 구조의 콤팩트한 집보다 공용공간이 훌륭하게 설계된 집을 선택한다. 임대료가 더 비싸더라도 말이다. 거주자 역시 공용공간에 가치를 두기 시작했고,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집’에 대한 심리적 경계가 달라진 입주자들의 경험이 수집되고 있다. 집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나의 공간에 들어섰다고 안심하는 순간은 저마다 다르다. 모퉁이를 돌아서서 하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대문을 통과해 마당으로 들어설 때 등등. 기존 주택에서는 대부분 현관을 열고 들어가야 비로소 개인의 공간, 우리집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공용공간이 달라지자 건물에 들어설 때부터 ‘우리집’이라고 느끼고 소개한다.
새롭게 해석되는 집합주택
아무리 충분한 상담과 논의를 거쳐 설계하더라도 건축가의 의도대로 온전히 쓰이는 건축물을 보기 드물다. 건축주나 입주자에 의해 60~70% 정도 쓰이지 않을까. 전농동 유일주택 작업 이후, 버려지는 아이디어나 제안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면서 직접 건축하고 운영을 시도하게 됐다. ‘써드플레이스’ 브랜드를 만들었고, ‘써드플레이스 홍은2’는 입주 및 운영을 시작했다.
“공급자가 아닌 거주자 입장으로 보면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집이 나올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요. 무엇이 필요할까? 뭘 해주면 더 좋아할까? 어떤 프로그램을 어느 만큼 만들까? 직접적으로 고민하게 되면서 변화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건물의 형상, 디자인, 재료의 중요성 등 물리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집과 집,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디자인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많아졌어요.”
집으로 가는 길의 변화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주거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써드플레이스 홍은2로 가는 길. ©김주영 작가
‘써드플레이스 홍은2’는 서울시 공동체주택 인증을 받은 5층짜리 집합주택이다. 구조와 면적이 모두 다른 다섯 개의 집에 20~40대 1인 가구 5세대가 입주해있다. 사람이 섞이고 삶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매개를 두었다. 프로그램을 운영해 입주자간의 자연스러운 연결은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식사를 하고(일월일식), 텃밭을 함께 가꾼다(텃밭이룸). 1층에는 라운지와 근린생활시설을 두었다. 입주자는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이 사용하고 교류하는 장치를 한 것이다. 다섯 세대의 외부 공용 복도는 외부 거실, 화단, 텃밭 등으로 만들었다. 물론 각 층에서 전용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설계했다.
엄격한 입주 심사를 거친 입주자들은 공간의 질과 커뮤니티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안심되고 위안이 된다’,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집에 들어가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리뷰를 받는다.
“사회적 감시자의 역할을 해주는 이웃이 필요한 이유, 주거의 안정성이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시켜줍니다. 공간의 변화가 사람을 어떻게 바뀌게 하는지 관찰하면서 건축가의 개입 정도를 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써드플레이스 홍은2는 세대마다 공간의 면적과 구조가 다르게 설계됐다. 201호(왼쪽 사진)와 302호의 모습. ©김주영 작가
이웃과의 관계성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과거에는 동네 아저씨가 운영하는 가게, 동네 아줌마가 하는 미장원이 동네사람들을 연결하는 접점이었다. 동네 상권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흡수되어 버렸고,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접점은 아예 없어져버렸다. 이웃의 개념이 사라져버려 배타적이고 개별성에만 집중하게 됐다.
“1990년대~2000년대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옆집 사람과 소통하는 기회조차 사라진 거예요. 관계를 맺는 본능조차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공간을 만들고, 동네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 건축가로서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해요.”
써드플레이스 홍은2의 외관과 개방감 넘치는 공용공간들. ©김주영 작가
입주해서 사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집의 구조를 만들기 위한 건축가의 개입은 어떻게 반영될까? 대문의 위치, 현관과 현관 앞 영역의 분리, 계단의 연결, 가구나 기구의 활용, 집으로 들어가는 길과 건물 사이의 공용 기물 등을 꼼꼼하게 따진다.
“과거에는 층간소음이 없었을까요? ‘그 집에 아이들이 좀 유별나’, ‘저 집 사정이 좀 있어’ 식의 이웃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심리적 완화 장치가 있었을 거예요.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 또 주변에 사는 이웃과의 관계 설정, 건물과 연결된 도로와의 관계 설정 등을 통해 이런 완화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써드플레이스 홍은2 공용공간과 각기 다른 스케일의 현관. ©김주영 작가
써드플레이스 홍은2 반경 400m 내에는 또 다른 써드플레이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걸어서 10~15분 거리 안에서 관계성을 회복한 건축물을 점 조직으로 동네를 바꾸어 나가는 동네 경영을 면으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규모는 작지만 품질 높은 집, 그 집들을 거점으로 서로를 연결하는 서비스가 들어가면 더욱 살기 좋아질 거예요. 기존 필지 위에 동네 분위기가 유지되거나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박창현 소장은 공간의 변화가 거주하는 사람을 어떻게 바뀌게 하는지 관찰하면서, 집과 집,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고민한다.
많은 사람들은 건축물을 수익과 관리 차원으로 본다. 관리의 효율성만 따져서 지은 건물은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다. 집에 사는 사람이 원하는 바는 희생하고 집이 요구하는 바에 맞추다 보면 불필요하게 예민해지고 마음마저 닫힌다. 공간에 사는 사람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주거의 안정을 통해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이웃과 관계 맺음으로 인해 계속 살고 싶은 집과 동네를 만난다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글 편집부 사진 이보영 사진 제공 에이라운드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