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부동산 시장 확대로 건설사의 하이엔드 브랜드간 경쟁이 치열하다. 정부의 고가 주택 규제에도 고급 주거 단지를 원하는 요구 증가와 날로 어려워지는 주택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는 건설사의 도전이 맞물린 결과다. 하이엔드 브랜드 아파트 현황과 앞에 놓인 과제를 살펴본다.
고급화 전략 꾀하는 건설사 하이엔드 브랜드
하이엔드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비슷한 기능을 가진 기종 중에서 기능이 가장 우수한 제품’. 패션, 자동차, 오디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는 하이엔드 개념이 건설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고가 주택 거래 증가에 힘입은 변화로 보인다. 국토교통부 부동산 실거래 정보에 따르면 3.3㎡ 당 1억 원이 넘는 초고가 아파트 거래는 2017년 26건, 2018년 228건, 2019년 639건, 2020년 790건으로 그 증가세가 빠르다.
하이엔드 브랜드 아파트는 단순히 비싼 분양가나 고급 자재 마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외관과 조경, 커뮤니티, 첨단 시스템, 호텔의 컨시어지 서비스 버금가는 특별한 주거 서비스 제공을 포괄한다. 부동산 큰손들은 자신들이 주거 공간에 기대하는 차별화된 서비스가 충족된다면 가격에 연연하지 않는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거 서비스에 대한 니즈는 더욱 커졌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가 시세 가치를 선도하는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입주민의 프라이드를 높여줄 것이다. 이에 건설사들은 앞다퉈 소프트웨어 설계에 힘을 실어 최고급 주거 문화를 제공하고자 한다.
건설사별 하이엔드 브랜드 현황
주택 시장 상황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건설사들은 하이엔드 브랜드를 앞세워 고급 아파트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자 한다. DL이앤씨는 2019년 e편한세상의 하이엔드 주거 브랜드 ‘아크로’를 리뉴얼해 선보였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체험할 수 있는 아크로 갤러리를 운영하며 도슨트 형식의 투어 관람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펼친 바 있다. 현대건설은 2015년 브랜드 ‘디에이치’를 론칭했다. 첫 수주에 성공한 단지인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가 올 6월 입주를 시작하며 프로젝트의 성공을 알렸다.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라클라스’. ©유튜브 ‘단 하나의 완벽함, THE H’
롯데건설은 한정판을 의미하는 Limited Edition의 약자인 LE와 롯데를 상징하는 시그니엘, 애비뉴엘 등의 접미사 EL를 결합한 브랜드 ‘르엘’을 내세우고 있다. ‘르엘’은 서초구 반포우성 아파트와 강남구 대치2지구에 이어 흑석9구역 시공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대우건설은 깊이가 만드는 높이라는 TV 광고 슬로건을 내걸고 일찌감치 하이엔드 브랜드 ‘푸르지오 써밋’을 선보였다. 한화건설은 ‘꿈에그린’에서 연결이라는 의미를 가진 ‘포레나’로 브랜드를 변경하고 사람과 주거 공간의 연결을 통한 한화만의 주거 문화 형성을 꾀하고 있다.
시공사 교체 요구? 건설사의 고민과 과제
하이엔드 브랜드를 내세운 건설사들은 미분양 리스크 없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집중한다. 정비사업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수주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뜻하지 않은 복병이 등장했다. 서울 외곽과 지방에서도 하이엔드 브랜드를 선호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조합에서 시공사를 교체하거나 교체를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부산 재개발 사업지인 서금사5구역, 괴정5구역은 시공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재건축단지인 수영구 남천동 남천2-3구역(삼익비치타운)도 일부 조합원이 하이엔드 브랜드 시공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곳은 2016년 GS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 현장이다. 광주광역시 최대 규모의 재개발 단지인 광천동 주택가 재개발 사업지도 건설사 컨소시엄과의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그 이유는 단일 시공사 및 DL이앤씨의 ‘아크로’, 롯데건설의 ‘르엘’ 등 하이엔드 브랜드 시공 요구 과정에서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외 기존의 건설사 아파트 입주민들이 현재 아파트명을 하이엔드 브랜드명으로 바꿔달라는 등의 요구도 들려온다.
건설사들은 난감한 입장이다. 서울 강남이나 용산 등 고급 주거지가 아닌,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시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합원들이 기존 브랜드보다 공사비가 30~50% 가량 추가되는 부담을 수용하는 경우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사업성이 떨어져 수주를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가치 상승의 기회를 잡으려는 조합과 수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건설사의 이해 관계가 계약 성사 혹은 계약 파기라는 상반된 결과물을 낳았다. 하이엔드 브랜드를 앞세워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건설사로서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본이자 최선의 전략으로 대응할 시기가 아닐까 한다.
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