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력이 강한 코로나19는 다중이용시설에 큰 타격을 주었다. 기업들은 발열 체크와 방역만으로 직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안으로 조심스럽게 시작된 재택근무. 코로나19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시점, 재택근무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재택근무 사례 엿보기
“지난 3월 코로나19 초기부터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도입했습니다. 처음에는 개인 PC에 업무 시스템을 깔고, 조직 내 소통 체계를 갖추는 등 우왕좌왕했었죠. 저는 잠옷 바람으로 책상에 앉아 일하다가 중간중간 침대에 눕거나 이른 점심 식사를 하는 등 일과 일상생활이 뒤죽박죽이었거든요.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재택근무 시에도 출근 준비하듯 책상 주변을 청소하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정해진 일과대로 일하고 있어요. 사무용 의자와 노트북 받침대를 구입했더니 한결 편해졌어요. 무엇보다 족히 세 시간이 걸리던 출퇴근 스트레스가 없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에요. 불필요한 시간이 줄어드니 온전히 업무에 대한 시간을 제가 관리할 수 있어서 집에서도 여유 시간이 생겼어요. 재택근무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 32세 회사원 박 모씨
“저는 재택근무가 반갑지 않습니다. 재택근무 시 아침 9시만 되면 상사의 ‘톡’이 시작되서 즉시 답장하지 않으면 근무 태만으로 보일까 싶어 신경 쓰여요. 집에는 달랑 노트북뿐이라 프린트나 스캔도 할 수 없고 회사 VPN(가상 사설망)이 불안정해 메일을 보내고도 여러 차례 수신 확인을 하는 상황도 빈번하고요. 수시로 ‘아빠’를 찾는 초등학생 아들과 씨름하는 일도 어렵네요. 함께 재택근무 하던 아내마저 출근하는 날이면 집중해서 일할 수가 없어 오히려 근무 시간은 늘어나게 되네요. 이럴 바에는 출근하는 편이 훨씬 낫다니까요.
– 43세 회사원 김 모씨
해외 기업들의 재택근무 이모저모
구글은 올해 초 북미 지역 모든 임직원 재택근무 권고를 시작으로 최근 재택근무 기간을 2021년 6월까지 연장하기로 하고 출근할 필요가 없는 직무에 대해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앞으로 5~10년 내 전 직원의 50%가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며 재택근무 중심으로 회사 운영 방식을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재택근무 기간도 올 연말까지로 연장했다. 올 3월부터 재택근무를 시행해온 트위터는 “직무 성격이나 여건상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원은 앞으로도 재택근무를 하도록 할 것”이라며 영구적 시행을 밝혔다. 블록체인 개발 업체인 카데나는 브루클린 본사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는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생각을 굳혔다. 현재 카데나는 전 직원 재택근무 중이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 재택근무
코로나19 유행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코로나19 종식을 기대하며 임시방편으로 시행했던 재택근무는 주 5회 나인투식스라는 전통적인 근무제를 빠르게 밀어내고 있다. 단기간이지만 재택근무를 경험한 기업들은 비교적 결과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국내 매출액 500대 기업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이후 근로 형태 및 노동환경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4개사 중 3개사가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거나 확대했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기업 중 51.1%는 ‘코로나19가 진정돼도 이런 근무 방식을 지속확〮대하겠다’, 56.7%는 ‘유연근무제 시행이 업무효율및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예방을 목적으로 시작한 재택근무는 발전된 IT 환경을 기반으로 자리매김할 추세이다.
재택근무 앞에 놓인 과제들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기업은 일하는 방식의 대전환을 맞이하며 업무의 연속성과 능률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피할 수 없다. 우선 직원이 집에서 사무실과 동일한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 투자가 따라야 한다. 즉 스마트워크 문화 구축이 첫 번째 과제다. 가령 화상회의를 진행하려면 화상회의 프로그램과 웹 카메라, 실시간 반영할 수 있는 온라인 문서 공유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 국내외 기업들은 팀즈, 슬랙, G-Suite, 워크플레이스 등의 협업 툴 프로그램을 갖춰야 한다. 집에서 일하면 집중도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우려해 거점 오피스를 도입하는 기업도 있다. SK텔레콤은 직원 자택 20분 이내 거리에, 롯데쇼핑는 유통업계 최초로 수도권 일대 다섯 곳에 거점 오피스를 도입했다.
직원의 대부분이 개인 PC를 사용하며 생기는 기업 데이터 유출 문제도 우려되므로 엄격한 보안대책이 우선이다. 이 점 역시 데이터 손실과 맬웨어 감염 위험 등을 줄이는 솔루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업무 평가 기준 마련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미국의 어느 기업에서 컴퓨터 마우스가 20초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인사팀에 통보되는 방식을 채택해 문제가 된 경우가 있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직원도 납득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이 있어야 한다.
스마트워크 문화 자리매김의 기회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옛 속담이 잘 어울리는 시대다. 이제 사무실에서는 외근, 출장, 회식 등이 줄고 온라인 교육이 집합 교육을 대신한다. 층간 이동이 제한되는 등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는 시기, 어쩌면 재택근무는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코로나19로 그 시행이 빨라졌을 뿐이다. 재택근무자는 출퇴근 시간에 지옥철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집이 먼 경우 오가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비교적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일 뭐 입지?’하는 출근복 고민도 덜어질 것이다.
재택근무의 긍정적인 측면 중 두드러지는 점은 아직 남아 있는 낡은 기업 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불필요하게 열리던 잦은 회의, 눈치 보느라 사무실에 남아 있는 야근 문화, 원만한 회사 생활을 위해 싫든 좋은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고 회식하며 느끼던 피로감 등과 이별할 기회다. 그만큼 재택근무자 자신도 일상과 업무를 분리해 삶의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하며, 자신이 맡은 업무를 정확하게 파악해 수행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재택근무 실험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1년, 5년, 10년 후 우리의 업무 환경, 기업 문화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부디 성공적인 결과물을 손에 쥘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