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추석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상 초유의 비대면 명절을 맞이할 전망이다. 화상 전화로 가족의 안부를 묻고 선물은 택배로 배달하는 등 예년과 180도 달라질 2020년 추석 풍경을 가늠해 본다.
부모님께서 먼저 추석에 내려오지 말라고 말씀해주시기를 기대했는데 “언제 내려올거니?”라고 하셨어요. 명절에는 당연히 온 가족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 거절을 못 했어요. 어린아이도 있어 불안하지만 기차 대신 자차를 이용해 휴게소에는 최대한 들르지 않고 고향에 다녀올까 합니다. 부모님께서 서운하시겠지만, 하룻밤만 묵고 귀성할 생각입니다.
– 38세 자영업 박 모씨
추석 연휴마다 해외여행을 다녔는데 이번에는 선택의 여지 없이 집콕 예정입니다. 국내 여행이라도 갈까 했는데 이번에는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자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요즘 아내와 집에서 뭘 하면서 지낼까 계획을 세우느라 새로운 즐거움이 생기기도 했어요. 아내는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어 하고, 저는 게임을 실컷 하고 싶네요.
– 33세 회사원 이 모씨
낯선 그 이름, 비대면 명절
코로나19는 고유의 전통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신조어가 등장한 이번 추석은 직접적인 만남은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정부 당국은 가능한 집에 머물라고 권유하지만 타임커머스 티몬이 고객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추석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추석 연휴 동안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직계 가족끼리 보낸다’는 응답이 47%로 가장 높았다. 한라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같은 응답이 51%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은 ‘집콕’이 41%로 나타났다. 명절인 만큼 최소한의 가족 모임은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가정도 생겨났다. 예전 방식 그대로 명절을 고수하려는 부모님 세대와 자식 세대 간의 충돌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19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아 비대면 명절이 반가운 이들도 많은 게 현실. 모두에게 이해와 배려가 요구되는 시기다.
명절 아닌 휴식의 기회로 변화
추석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지 않고 오랜만에 맞이하는 긴 휴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가족과 함께 집에서 여유롭게 쉬는 기회로 삼겠다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전통적인 명절 음식 대신 가족이 좋아하는 메뉴 위주로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려는 게 일반적인 모습. 물론 원한다면 얼마든지 명절 기분을 낼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혼자서도 명절 제사상을 차릴 수 있는 세트 상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전과 잡채, 나물 등으로 구성한 1인 명절 도시락도 판매한다.
평소 일상에 쫓기느라 미뤄둔 자기 계발이나 취미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를 몰아보거나 집 인테리어를 바꾸는 일, 홈트를 통해 연휴 동안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등 각양각색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도 명절의 의미가 희석되어 가는 변화의 모습이 코로나19로 더 강화될지도 모르겠다.
방역 세트가 추석 선물?
명절 선물하면 자연스레 한우, 과일 등이 떠오르는데 이번 추석 선물은 의외의 상품이 대세다. 면역력을 강화하는 건강기능식품, 손 소독제와 마스크와 같은 방역세트, 위생용품 등 코로나19와 밀접한 상품이 센스 있는 선물로 인기다. 통조림 햄이나 참치 등 가공식품과 뷰티 선물세트가 인기를 끌던 예년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다. 집콕 시간이 길어지면서 홈술, 홈카페가 트렌드가 되고 덩달아 커피 머신이나 원두, 와인 등을 찾는 경우도 많아졌다. 물론 한우나 LA갈비, 과일 등 신선식품 선호는 여전하다. 이런 흐름에 맞춰 유통업체 중에는 온라인 전용 선물세트를 선보이는가 하면 주문 상승을 고려해 예전보다 일찍 추석 선물 행사를 시작하고 있다.
제사, 선물··· 온라인이 만능 해결사
추석을 온라인 명절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많은 일이 온라인상에서 진행될 전망이다. 앞서 소개한 추석 선물은 양손 가득 들고 직접 전달하기보다는 온라인 주문을 통해 택배 기사가 대신할 것이다. 온라인 주문 후 오프라인에서 간편하게 픽업하는 배송법도 찾아볼 수 있다.
온라인 성묘도 등장했다. 보건복지부 ‘e 하늘 장사정보시스템(http://www.ehaneul.go.kr)’에서는 9월 21일부터 온라인 성묘 서비스를 제공한다. 추모관을 꾸미고 추모글을 남기는 등 마음을 담은 온라인 추모가 가능하다. 추석 연휴 동안 사전예약제로만 운영하고 온라인 성묘를 진행하는 봉안 시설도 있는가 하면, 가족 방문객을 받지 않고 간단한 명절 행사를 온라인으로 중계할 예정인 요양병원도 있다. 농협이나 산림조합 등을 통해 벌초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코로나19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