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의 해, 세상 변화에 맞서다
2024 대한민국 트렌드 읽기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 내 자리를 위협하는 AI와의 경쟁 등 희망보다 불안감이 앞서는 요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 변화에 대응할 능력을 갖춘다면 희망을 품고 올 한 해를 살아갈 용기가 생길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공저 ‘트렌드 코리아 2024’의 키워드를 통해 2024년 대한민국에 불어올 변화의 바람을 느껴본다..

한때 가성비가 핫한 트렌드였다면, 이제는 시간을 모듈화하여 효율을 높이려는 시성비의 시대가 도래했다. 직장인은 반반차, 반반반차를 내어 은행 업무를 보고, 점심시간에 짬 PT(틈새 PT, 세미 PT)를 받는다. 드라마나 영화는 요약본을 찾아 몰아보기를 한다. 이처럼 시간이 돈만큼이나 중요한 자원이 됐다. 요즘 사람들은 보고 즐기고 경험해야 할 것이 정말 많기 때문에 여러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며 극한의 시간 효율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짓고, 코딩에도 능숙한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인간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AI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건가 하는 실존적인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단순 반복형 일자리는 감소하고 국가와 계층 간 양극화는 심화할 우려가 크다. 단, 생성형 AI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 인간의 아날로그 역량이 중요해진다. 프롬프트는 AI에 인간이 던지는 질문을 뜻하는데, 질문에 따라 AI가 내놓는 결과물은 뚜렷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은 AI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인간 고유의 사색과 해석력을 겸비해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고, 고생 끝에 성공하는 인간은 더 이상 인기가 없다. 이 시대는 처음부터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간을 인정한다. 벌집을 닮은 헥사곤 그래프의 기준 축이 끝까지 채워진 ‘육각형인간’, 이는 내가 아닌 타인이, 사회가 원하는 이상형이다. 게다가 육각형인간은 행복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노력과 과정의 가치, 나다운 것이 행복하다는 말이 진부하게 느껴지는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동일한 상품에는 동일한 가격이 존재한다는 일물일가(一物一價)의 법칙이 무너지고 있다. 상품을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가격이 ‘버라이어티’하게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영화라도 아침에 보면 저렴하고, 주말에는 더 비싸진다. 같은 음료라도 다이소가 편의점보다 저렴하다. 공급자와 유통자는 가격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려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을 납득할 수 있어야 지갑을 열 것이다. 양측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접점 찾기가 숙제라 하겠다.

인간은 재미를 좇는 본능을 가진 존재이다. 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일상이 되고 강해지고 있다. 도파밍은 즐겁고 새로운 일을 경험할 때 나오는 도파민에 게임 아이템을 모으는 행위를 일컫는 단어인 파밍을 합친 말이다. 즉 기발하고 엉뚱한 일, 때로는 기괴하고 가학적으로 보이는 스트레스를 자초해 반전의 쾌감을 누린다. 도파밍은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만든다.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도파민과 마음이 편안하고, 남을 도울 때 나오는 세로토닌의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다.

결혼과 육아는 용기를 내고 준비를 해야 하는 인생의 가장 큰 선택이다. 오늘날의 추세에 맞춰 3040세대 남성의 역할이 달라졌다. 권위를 앞세우는 가장이 아닌, 평등한 동반자로서 집안일과 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요즘남편은 장비빨로 집안일을 하고, 눈치력을 갖추고 본가와 처가까지 두루 챙긴다. 자녀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6시 신데렐라’가 되어 귀가하기도 한다. 행복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남성들의 변화가 기업과 가정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 시리즈가 영화와 드라마로 확장되고 이 작품들은 마블 유니버스라는 세계관을 공유한다. 이처럼 특정한 원작에서 파생되어 나온 작품을 뜻하는 스핀오프라는 개념이 브랜드, 기술 조직 관리, 개인의 경력 개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은 사내 벤처나 사내 독립기업을 통해 새로운 기술과 상품 등을 육성한다. 개인은 업무 관련 분야나 관심 영역에서 성과를 추구하고자 하는데, 부업과는 다르다. 스핀오프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변화하려는 기업과 개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상품을 고를 때 수많은 선택지는 때론 스트레스로 느껴진다. 상품 정보를 찾고, 가격을 비교하고, 리뷰를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면, 그저 ‘나도(Ditto)!’라고 외치기만 한다면 얼마나 편할까? 디토소비는 특정한 사람이나 콘텐츠, 커머스를 추종해 구매하는 것이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를 따라 소비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 가치관에 맞는 대상을 추종함으로써 간단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선택의 어려움과 실패의 두려움을 덜어낸다.

액체를 뜻하는 리퀴드와 도시를 의미하는 폴리탄의 합성어 리퀴드폴리탄은 현대의 도시와 지역의 유연한 변화를 의미한다. 사람을 불러 모으는 매력을 가진 시그너처스토어, 도시를 재해석해 변모시키는 해당 지역 출신의 지역 기업가, 고객과 해당 상권을 분석해 공간을 바꾸는 도시 기획자 등의 역할이 중요하다. 인구는 줄고 광역 교통이 발달한 사회에서 유목민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리퀴드폴리탄을 원한다. 이는 지역의 불균형 발전과 소멸을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세상, 즉 사람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연민이나 복지의 개념을 넘어 경제의 문제이다. 돌봄경제는 신체적 어려움을 챙겨주는 배려 돌봄, 신체와 마음마저 보듬는 정서 돌봄, 마지막으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관계 돌봄으로 나뉜다. 돌봄은 최신 기술을 활용한 언택트 서비스로도 가능해진다. 개인화되고, 분초를 다투는 사회에서 돌봄경제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글 편집부 참고 및 발췌 트렌드 코리아 2024(김난도 외 10명 지음 | 미래의 창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