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탈바꿈 ep. 2
이태원 신흥시장 ‘클라우드’

혁신적인 소재와 건축 공학이 빛을 발한 이태원 신흥시장 아케이드 ‘클라우드’. 낙후된 신흥시장의 공간 혁신을 통해 지역과 시민 모두를 위한 새로운 도시 공간을 만들었다. 국토교통부 주최 대한민국 공간대상에서 국무총리상(최우수상)을 받은 데 이어 ‘2024 서울특별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은 ‘클라우드(CLOUD)’를 만나본다.

낮과 밤, 사람이 모이는 시장 골목골목

이태원 해방촌 지역에 있는 신흥시장(서울시 용산구 용산2가동 1-480 외 69필지)은 서울 토박이에게도 낯설다. 한국 전쟁 이후 피난민이 정착해 니트와 생필품을 생산해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에 팔던 곳이다. 활기로 넘치던 모습을 점점 잃어간 신흥시장은 남산의 고도 제한과 건폐율 100% 초과로 인해 개발조차 어려워 방치된 상태였다.

희망의 물꼬는 2017년 신흥시장 아케이드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됐다. 서울시가 신흥시장 환경개선을 위한 설계 공모를 했고, 그 결과 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와 큐앤파트너스건축사사무소가 협업해 디자인한 ‘클라우드(CLOUD)’가 선정됐다. 시장을 덮은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건물 위로 아케이드 지붕을 구름처럼 높게 띄운 ‘클라우드’가 가져온 변화는 놀랍다. 설계 기간 3년 10개월, 공사 기간 2년 3개월, 토목공사를 제외한 아케이드 공사 기간 7개월, 무려 5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이 흐른 지금, 신흥시장은 현대적이며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 위진복 대표(왼쪽)와 큐앤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홍석규 대표

신흥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골목골목을 돌고 돌며 공간을 즐긴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마음에 드는 가게에 들르기도 한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붉은 벽돌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은 SNS에 업로드되어, 또 다른 방문객을 부른다. 낮에도, 밤에도 사람이 모이고 머무는 공간은 오래 전 신흥시장의 북적거림을 되살려 놓았다.

유연한 디자인을 가능케 한 ETFE 소재의 발견

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 위진복 대표와 큐앤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홍석규 대표는 기존 맞벽 조적조 건축물이 가진 한계, 지형, 상인들의 요구사항, 날씨, 까다로운 건축 법규 등의 요인들이 산재한 가운데 해법을 찾아야 했다.

신흥시장의 공간 혁신에 핵심 소재인 ETFE(Ethylene Tetrafluoroethylene, 초극박막 불소수지 필름)는 건축가의 고민을 말끔히 해소해준 해답 중 하나이다.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 콘웰 이든 프로젝트, 베이징 올림픽 수영장인 워터 큐브 등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높이 평가받고 있다. 공기 충전 방식으로 매우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난 ETFE는 유연한 디자인을 가능하게 해 아케이드를 3D 비평면(Non-planar) 루프 형태로 설계할 수 있게 했다. 곡선형 지붕 구조가 주는 독특한 매력뿐 아니라, 자연광이 잘 통과하고 자연환기 기능도 있어 시장 내부를 밝고 쾌적한 공간으로 유지한다. 슬레이트 지붕에 가려졌던 2층 이상도 더 이상 죽은 공간으로 남지 않게 됐다.

“늘어나거나 쉽게 찢어지지 않아요. 장마나 태풍이 지나가면 깨끗해지는 셀프 클리닝 기능도 갖췄죠. 게다가 불이 나면 완전 연소하기 때문에 불완전 연소로 인한 가스로 질식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소재인 거죠.”

최소한의 면적으로 최대의 구조적 효율을 얻은 기둥 설계

기둥은 전체 아케이드를 지탱하면서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12개의 기둥이 4개씩 묶여 하나의 세트를 이루며, 이 기둥들은 나뭇가지와 같은 구조로 상부를 지탱한다. 기둥 하나의 면적은 1㎡에 불과하며 이는 명함을 샤프심으로 받치는 수준이다.

“기둥 기초가 무척 중요해요. 보통 건물은 중력과의 싸움인데, 이곳은 가벼운 소재를 사용한 구조라 위로 솟구치려는 힘과의 싸움이거든요. 처음에는 기존 건물을 기둥의 지지 구조로 활용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장기간에 걸쳐 건물에 미칠 영향이나 안전관리 면에서 독립형 구조로 변경이 되고, 기둥 개수도 12개에서 48개로 늘어나게 됐어요.”

휘어진 기둥의 형태 역시 협소한 시장 공간과 구조적 조건을 고려한 결과로 효율성을 높이고 동시에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건축의 효과를 경험하는 공간

위진복 대표는 디자인은 곧 건축 공학, 즉 엔지니어링이라고 강조한다. 신흥시장 아케이드는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건축 디자인과 공학적 요소가 결합한 공간이다. 이를 위해 앞서 설명한 공기를 활용한 경량 구조와 복합 소재인 ETFE를 선택했다. 아울러 기하학적 계산과 바람, 하중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아케이드를 지지할 기둥 구조를 설계했다.

좁고 복잡한 공간에 맞춘 최신 공학 기술이 신흥시장의 변화를 불러왔고,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한 셈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 취향에 따라 이 공간을 해석하고 이용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공간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좋은 디자인은 공기와 같다는 위진복 소장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신흥시장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성공은 여러 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서울시와 시장 상인회, 건축가가 일군 협업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남산의 랜드마크가 된 건축물로서의 가치, 마지막으로 상인들이 얻은 경제적 효과까지 건축 영역 너머의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바로 건축의 효과를 실증적으로 입증한 성공 사례라 하겠다.

글 편집부  사진 인성욱  자료 제공 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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